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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징어 다리에 눈이 달린 것 같은 인체가 대포를 몸에 장착한 채 뭔가를 쫓아가는 기이한 그림이다. 1950년대 초 북한과 전쟁 중이던 시기에 남한 작가 변원영이 그렸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여성의 혼령을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연상시키는 인체에 초현실주의를 섞어 그린 ‘반공여혼’(1952)이다.
변영원, '반공여혼'(1952, 캔버스에 유화 물감, 77.5×114.3㎝).
디딤돌 보금자리론 #2. 고문을 당하는 듯 남자의 눈은 가려지고 입에는 고무호스가 물려 있다. 또 광화문 광장, 최루탄을 던지는 남자와 총을 든 남자, 서양 명화 속 성모 마리아 등 이미지의 파편들이 콜라주 돼 초현실적 분위기를 풍긴다. 이 그림 ‘서울, 1975’(1975)는 파리로 유학 갔던 임세택이 유신 독재를 고발하며 현지에서 그렸다.
유동화
임세택, '서울 1975'(1975,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162×129.5㎝).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전을 한다.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시리즈 두 번째로, 한국미술사 속 숨겨진 6인의 초 햇살론대출문의 현실주의 근대미술가를 초대해 개인전처럼 꾸몄다. 즉 김욱규(1911∼1990), 김종남(1914∼1986), 김종하(1918∼1011), 신영헌(1923∼1995), 김영환(1928∼2011), 박광호(1932∼2000)가 그들이다. 각자의 시공간에서 초현실주의를 끝까지, 외롭게 고수한 작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시는 비주류였던 이들 단리 6명의 주인공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1부 ‘삶은 다른 곳에 있다’를 통해 맛보기처럼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주류 작가들을 초대했다. 이중섭, 천경자, 박래현 등 대중에게 익숙한 유명 작가들을 포함해 여러 작가들이 남긴 작품 가운데 은연중 초현실주의의 유산이 반영된 작품들로 구성됐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사례로 든 변원영, 임세택의 작품도 이 코너에 소 정액서비스 개됐다.
초현실주의는 세계1차대전 이후인 1920∼30년대 파리에서 시작돼 국제적으로 퍼져 나간 예술사조이다. 시인이자 미술평론가 앙드레 브르통이 1924년에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 것이 신호였다.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다루기 위해 자동기술(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표현), 콜라주, 이중 영상, 왜곡 등의 기법을 쓴다. 세계 대전이라는 세기의 비극을 낳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이 깔려 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일본에 전파된 초현실주의를 현지서 맛본 일본 유학파가 중심이 돼 수입됐다.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천경자 등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초현실주의의 그림자’는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 미술계에서 초현실주의가 주류로 설 자리는 없었다. 60년대 앵포르멜, 70년대 단색화와 실험미술, 80년대 민중미술,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이어지며 초현실주의를 고수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도 모른 채 혼자 각자의 방에서 초현실주의를 실천했던 것이다.
김종남(일본명 마나베 히데오)은 경남 산청 출신으로 일본에 유학 가서 초현실주의를 접했다. 1950년 마나베 집안의 양자가 돼 성을 바꾸고 일본인 여성과 결혼하며 한국인임을 숨겼다. 숲 속 풀 속에 정령처럼 숨은 인물과 동물, 달밤의 도시 골목에서 탭댄스를 추는 장애인들을 묘사한 장면 등에서 불안한 내면, 해방의 욕구가 읽힌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역시 일본 유학파인 김욱규는 월남 한 뒤 북한에서의 전력 때문에 세상과 단절한 채 작업했고 사후에야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그림에도 숲에서 동물과 인간이 대등한 존재로 춤을 추는 등 초현실적 상상이 짙게 깔려 있다. 김종하 역시 일본 유학파인데, 1956년 파리로 가면서 초현실주의를 접하게 된다. 파란 하늘에 난 네모진 창 등 단순한 구성과 선명한 색채에서 마그리트가 연상된다. 이어 해방 후 한국의 대학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다음 세대인 박광호, 김영환, 신영헌 등 3명의 작품 세계에서는 에른스트, 달리, 기리코 등 서양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영향이 강하고 직접적으로 반영돼 있다.
문제는 이들 주인공 6명이 한국 미술사의 주력부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또 어떤 선언도, 교류도 한 적이 없기에 후배 세대에게 끼친 영향도 없다. 따라서 “모아 놓으니, 의외로 초현실주의가 있었네. 재밌네!”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전시를 기획한 박혜성 학예사는 “당대의 전위를 좇는 대신 자신만의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탐구하고 완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작가의 경우 서구 초현실주의를 ‘번안’한 듯해 자신만의 초현실주의 세계를 ‘완성’했다는 평가는 과하다.
그래서 더 주목되는 것은 전시의 1부다. 식민과 전쟁, 분단으로 인해 초현실주의가 적극적으로 전개되지 못했지만 1910∼20년대 태어난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천경자 등 일본 강점기 유학파 1세대부터 1950년대 태어난 포스트모더니즘 사진작가 구본창에 이르기까지 20세기∼동시대 한국현대미술사에는 초현실주의가 지하수처럼 면면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황소로 유명한 이중섭은 20대 시절 일본에 둔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엽서를 보낼 때 소, 물고기, 새, 아이, 여인 등을 환상적인 기법으로 그려 보냈다. 불륜의 사랑을 한 천경자는 샤갈의 그림 같은 ‘상상적 사실주의’로 결혼의 행복을 꿈꿨다. 변영원의 사례처럼 반공주의자는 반공의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임세택, 신학철, 안창홍 등 민중미술 진영은 독재에 항거하는 우회적 방법으로 초현실주의를 가져왔다. 전시에서는 작가들이 이처럼 다양한 목적으로 의존했던 초현실주의가 어떤 분류도 없이 그냥 나열됐다. 정색하고 분류하며 좀 더 들여다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초현실주의는 없었다는 통념을 깼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7월 6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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