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학 한 길을 걸었지만 그 안에서 여러 역할을 경험했다. 법원에서 근무했던 아버지를 보며 법조인을 꿈꿨고, 서울대 법대를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10년 가까이 일한 뒤 2011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교수가 된 뒤에도 강단에만 머물지 않았다. 대법원 전문직 재판연구관을 비롯해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등에서 활동하며 실제 시장과 법이 만나는 지.을 살폈다. 상법·증권·금융규제 분야를 연구해온 그는 올해 한국경제법학회 제18대 회장으로도 선출됐다.
임 교수는 일과 가족 사이에서도 완벽한 균형보다는 자신의 상황에 맞는 방식을 찾아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 법조계와 학계를 오가며 얻은 결론은 '사람'이었다. 혼자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함께 일하고 관계를 맺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임 교수를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법학관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10년 가까이 변호사로 일했다.
▲로펌 생활은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법률 자문은 학교에서 배운 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일이 아니었다. 법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문제도 많고 감독 당국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었다. 의뢰인은 짧은 시간 안에 답을 원했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일하거나 새벽에 출근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하나의 문제를 해결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컸다. 증권회사 인수 실사나 SK하이닉스 실사 등에 참여했고 여러 기업의 법률문제를 다뤘다. 외국계 고객이 많아 영어로 의견서를 작성하고 회의와 출장도 했다. 타지키스탄에 가서 일본 기업과 현지 통신사 인수를 협상한 경험도 있다. 거래가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서로 다른 국가의 기업이 일하는 방식과 문화의 차이를 직접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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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변호사를 그만두고 교수로 옮겼다.
▲변호사로 일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교수라는 직업을 통해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이 좋았다. 학교에 처음 왔을 때는 수업 준비만으로도 상당히 바빴다. 이후 금융위원회나 한국거래소 등 외부 활동을 하면서 다시 현실과 연결될 수 있었다. 로스쿨은 실무와 학문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교수는 변호사 업무를 겸직할 수 없기 때문에 학교 안에서만 강의하다 보면 실무와 멀어질 수 있다. 외부 활동을 통해 현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험하는 것이 중요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활동했던 경험이다. 판사와 재판연구관들이 사건을 놓고 계속 토론하고 여러 논리를 검토한다. 그 결과를 대법관들이 다시 검토하고 토론한 뒤 판결문이 나온다. 그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법을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나중에 대법원 판례를 보면서 어떤 논의를 거쳐 나온 판결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올해 한국경제법학회 회장도 맡았다.
▲학회장을 맡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학회에서 받은 것이 많았기 때문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맡게 됐다. 막상 해보니 재미도 있다. 특히 이번 학술대회에는 로스쿨 학생들이 많이 참여했는데 학생들이 학회 활동을 통해 교수들과 이야기하고 연구자들과 교류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학회는 연구자들이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학회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의 중요성도 다시 느끼고 있다.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가상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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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처럼 기존 법체계가 예상하지 못했던 영역이 등장하면 법이 현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규제하지 않으면 피해가 발생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규제하면 새로운 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막을 수도 있다. 인공지능(AI)처럼 새로운 기술이 계속 등장하는 만큼 앞으로도 법과 현실의 속도 차이를 어떻게 좁힐지가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로스쿨 교육에서 개선할 부분은.
▲처음 로스쿨에 왔을 때는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영어 수업도 하고 과제를 내고 발표하는 등 다양한 교육이 가능했다. 그런데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줄면서 시험과 직접 관련이 없는 수업에는 학생들이 잘 오지 않게 됐다. 학생들을 탓할 수는 없다. 학생들에게는 결국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로스쿨이 지나치게 시험 중심으로 가면 실무교육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론과 학문 연구도 충분히 하기 어려워진다. 실무와 학문 어느 한쪽도 놓쳐서는 안 된다. 실무교육을 강화한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론적 연구가 지속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필요하다.
-AI 시대에 법학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지식 자체는 AI가 상당히 잘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AI가 판례를 엉터리로 만들어내거나 존재하지 않는 내용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법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뭔가 이상하다'고 판단하고 검증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AI에 의존해 일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그 오류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결국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스스로 판단하고 검증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일과 가정의 균형은 어떻게 잡았나.
▲쉽지 않은 문제다. 다만 아이를 키울 때도 '엄마인 내가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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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힘들고 괴로운데 아이들을 위해 희생했다고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도 나에게 중요한 즐거움이었다. 그렇다고 일에만 매몰되지는 않았다. 한 가지에 지나치게 치우치면 스스로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직장에서는 일에 집중하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식으로 균형을 잡았다.
-교수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사별한 남편의 영향이 컸다. 남편은 불교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연구에 굉장히 진심이었다.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학문에 진심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학교로 자리를 옮기는 데에도 남편의 영향이 컸다. 연구를 대하는 태도나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도 많은 조언을 받았다.
-후배 여성 법조인과 연구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요즘 젊은 여성 교수들을 보면 우리 세대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일을 잘한다. 특별히 조언할 것이 많지는 않다. 다만 자기 역량을 키우는 것만큼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험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혼자 일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어떤 일을 하다 보면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학회 활동이나 사회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다.
▶임정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미국 UC버클리 로스쿨에서 법학석사(LL.M.)를 취득했으며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2011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임용된 뒤 상법·증권법·금융규제법 등을 연구하고 있다. 대법원 전문직재판연구관과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가상자산시장조사심의위원회,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및 코스닥시장 기업심사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2026년 3월부터 한국경제법학회 제18대 회장을 맡고 있다.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