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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에서 광화문까지 버스로 지나는 대로에는 어김없이 정당의 플래카드들이 고함치고 있다. 사나운 아우성이다. 복잡하게 얽힌 삶의 조건일랑 잊고 저들을 탓하자고, 당신을 설명하는 백 가지 어휘는 지우고 한 단어 속으로 들어가자고 선동한다. 존 버거의 문장이 떠올랐다. 2005년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가 일어났을 때 쓴 글이다. ‘정치가라는 인간들이 달려와 자신들의 이름으로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지껄여 댔다.’ 그리고 저 문장이 이어진다. 노인교통비지급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영국에는 양극화, 혐오에다 기후위기까지 복잡한 문제들이 뒤엉켜 있었다. 무엇보다 테러 희생자의 고통이 지속되었지만 정치인들은 단순화하고 혼란케 하는 말들로 모든 고통을 납작하게 눌러버렸다.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열화당(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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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이다. 스물다섯 살 한국 남성과 대화를 나눴다. 20대 남성이 보수화되었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입 다물 기세였다. 나는 세부적으로 물었다. 탄핵에 대해 어떤 생각이냐고. 그는 둘 다 잘못이 있다고 답했다. 정치로 해석하길래 계엄령은 괜찮냐고 되물었다. 있을 수 없는 가계자금대출 일이라고 답했다. 나는 성 소수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아무 생각 없다고 답했다. 그저 서로 잘 살면 좋겠고 다만 자기 주위에 없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나는 ‘환영하지 않을 사람에게 커밍아웃할 상대는 없다’는 말을 삼켰다. 끝으로 그에게 청년 세대 속에 남녀 갈등이 심각하냐고 질문했다. 그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긴 이야 제조원가 기라며 운을 뗐다.
그의 이야기는 요즘 내가 몇몇 20대와 나눴던 대화처럼 한 지점으로 수렴되었다. 정치인들이 청년 여성을 호명하고 뒤이어 청년 남성을 호명해 더 깊이 갈랐다는 것이다.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단순화시켰다고. 복잡한 현상들이 단순함 속으로 침몰해가고 있다.
안희경 작가
조건알바
안희경 작가, 김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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