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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한순간에 크나큰 피해를 보기도 한다. 상대방에 악의 때문에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당연하게도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사과와 피해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고, 가해자는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본인이 피해자라는 사실에 매몰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생채기만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동안 자기 상처를 일종의 ‘신격화’할 수 있게 되고, 이는 결국 다시 자신과 주변에 아픔을 주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나쁜 교육’(2004)은 자기 고통을 어떻게 원금균등 원리금균등 대해야 할지를 다루는 작품이다.
두 주인공은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씻어내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씨나몬㈜홈초이스]
어느 날, 첫사랑이 찾아왔다…“우리 이야기를 써왔어”
김치보 이야기는 영화감독 엔리케 앞에 어린 시절 친구인 이그나시오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기숙학교를 다니며 우정과 사랑을 키웠다. 그러나 이그나시오는 단순히 옛 친구를 보기 위해서 찾아온 것만은 아닌 듯하다. 어릴 때의 모습과는 아주 달라져 버린 그는 엔리케에게 ‘방문자’라는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을 주인공으로 써 달라고 집담보대출 요구한다.
영화감독 엔리케는 어느 날 자기 앞에 나타난 옛 친구 이그나시오를 보고 놀란다. [씨나몬㈜홈초이스]
엔리케는 이 제안에 질색한다. “배역을 찾는 배우만큼 매력 없는 닥터클럽 사람도 없지”라는 그의 발언에는 이그나시오를 불편하게 여기는 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그나시오가 떠난 뒤 읽어본 ‘방문자’ 각본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었다. 거기엔 어린 시절 두 사람이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겪은 트라우마가 그대로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네이버 금리계산기 이그나시오는 과거와는 아주 달라진 모습이었다. [출처=IMDb]
두 사람이 다녔던 학교에는 교사이자 신부였던 마놀로가 있었다. 그는 학교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으나 이그나시오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 심지어 엔리케와 이그나시오가 가까이 지내자 노골적으로 엔리케를 괴롭히기도 했다. 결국 엔리케는 학교를 옮기고 홀로 남은 이그나시오만 상처받게 됐다. 이 부분까지는 두 사람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어린 시절 가톨릭 기숙학교를 다니던 이그나시오는 신부에게 성추행당했다. [씨나몬㈜홈초이스]
그리고 이그나시오는 작가로서 자기 상상을 더한다. 신부를 찾아가 옛날 일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실제로는 없었지만 자신이 꼭 하고 싶었던 ‘복수’를 담은 부분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성당의 신부들이 이그나시오를 죽이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종교의 위선이 얼마나 추악한지를 드러낸 것이다.
신부의 폭력에 두 사람은 고통받았다. 그 와중에도 버텼던 것은 서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씨나몬㈜홈초이스]
각색인줄 알았는데, 전부 팩트였다
엔리케는 이그나시오를 주인공으로 해서 ‘방문자’를 촬영한다. 영화감독으로서 찍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촬영 현장에서 뜻밖의 방문자를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영화 속 악당인 마놀로 신부다. 신부는 그에게 진실을 들려준다. 사실 엔리케가 ‘픽션’이라고 생각했던 영화의 뒷부분은 ‘팩트’였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신부가 실제로 이그나시오를 죽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를 찍은 이그나시오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알고 보니 그는 이그나시오의 동생인 후안이었다. 동생의 사연은 이렇다. 이그나시오는 신부에게 성추행당한 과거의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마약에 찌든 폐인이 됐다. 동생인 후안에게 형으로서 의지가 되긴커녕, 동생의 기회를 빼앗아 갔다. 형은 어린 시절 학대당한 자신을 챙길 것을 요구했고, 엄마는 후안에게 형을 먼저 배려할 것을 부탁했다. 가정에서 후안의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이그나시오가 마놀로 신부를 찾아가 협박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그나시오의 입을 막으러 집에 찾아온 마놀로 신부는 후안을 발견하고 또 연정을 품게 됐고, 둘은 연인으로 발전한다. 마약쟁이 이그나시오가 매일 협박 수위를 높여가자 마놀로와 후안 커플은 끝내 그를 독살했고, 자기 죄책감을 덜지 못했던 후안은 이그나시오 행세를 하며 엔리케를 찾아간 것이다.
영화 속 영화의 이그나시오 [씨나몬㈜홈초이스]
자기 상처만 들여다보다간,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영화에는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이 나온다. 하나는 이그나시오고, 다른 하나는 그의 동생 후안이다. 이그나시오는 어린 시절 자기에게 생긴 끔찍한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결국 그 상처를 부둥켜안고 살다가 자기 삶을 망가뜨려 버린 것이다. 본인보다 더 아픈 사람은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남들에게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했다.
사실 엔리케는 후안이 이그나시오 행세를 하고 있다는 걸 어느 시점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그가 이그나시오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었을지는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출처=IMDb]
그 과정에서 후안은 또 다른 피해자가 돼버렸다. 형을 끝없이 보살피는 부모 때문에 자기는 돌봄 받지 못했다. 형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 동생을 더 질리게 해버렸다. 하지만 동생 또한 형에게 받은 상처를 절대시한 나머지 자기 객관화에 실패했다. 형에게 상처를 입힌 가해자와 결탁해서 결국 형을 살인하는 끔찍한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이그나시오인 척 영화를 촬영하던 후안은 형이 살해당하는 장면에서 무너져 울고 만다.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은 것이다.
후안은 신부와 결탁해서 형을 죽이고 말았다. [출처=IMDb]
이 작품은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이야기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아픔을 준 가해자를 증오할 권리가 있고, 또 그에게 사과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상처를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게 되면, 본인 역시도 남에게 아픔을 주기 쉬운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무기로 삼아 남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처를 극복하려고 애쓰는 동시에, 아픔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를 잡아삼키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어둠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질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과거에 상처 입은 사람이 아닌 인생 자체가 상처인 사람이 될 수도 있어서다. 액자형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관객이 자기 삶을 다각도로 보도록 도우며, 이처럼 경고한다.
‘나쁜 교육’ 포스터 [씨나몬㈜홈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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