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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쓰면서 놀면 안 좋은 게 뭐가 있어!"
아내 말이 맞다. 걱정 없이 돈을 쓰면서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일은 그야말로 최고다. 하지만 휴가지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곰곰이 따졌다. 그것도 맞는 말! 그러니까 우리는 아주 적절한 곳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태국의 후아힌Hua Hin이라는 도시였다.
후아힌은 태국 왕실의 휴가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주변이 조용하고 경치가 좋다고 했다. 가서 보니 여러 후기와 똑같이 조용하고 경치가 좋은 도시였다. 그에 맞게 그곳에서 우리는 조용히 지냈다. 낮에는 리조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책을 읽었고, 저녁에는 시내에서 밥을 먹었다. 누군가의 말대로 '요양'했다.
남들이 보기엔 심심한 휴가였지만 우리는 나름 바빴다. 그 와중에 산에도 다녀왔다. 산에 갔다 온 월간<산> 기자가 가만히 있어도 될까? 나는 여러 차례 갈등했다. '휴가지에 와서 일을 하는 건 좀 그렇잖아?'라는 생각과 '그래도 이건 기억 속에 묻어두긴 좀 아쉽잖아!'라는 생각이 싸웠다. 결국 아쉬운 쪽이 이겼다. 나는 이걸 기사로 쓰기로 했다. 그 정도로 이 '산'은 특별했다.
'홀리'한 동굴
리조트에서 쉬고 있는데 아내가 나에게 스마트폰을 내밀면서 "여기 가자!"고 말했다. 아내가 내민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프라야 나콘 케이브Phraya Nakhon Cave라고 적혀 있었다. 손으로 클릭해서 이미지를 봤다. 동굴이었다. 동굴 안에 사원이 있었다. 사원 위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는 사진이었다. 나는 '사진 잘 찍었네'라고 생각하면서 "좋아"라고 답했다.
인터넷으로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프라야 나콘'은 사람 이름이다. 그는 후아힌에서 남쪽으로 차로 8시간 정도(약 587km) 떨어진 '나콘시탐마랏'이라는 도시를 1760년 후반과 1770년 후반에 통치했다(당시 주지사 혹은 군수 정도 됐다). 그가 어느 날 북쪽으로 배를 몰고 바다를 항해하다가 태풍을 만나 이 해변에 머물렀는데, 머무른 김에 해변을 탐험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산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 난 큰 구멍을 발견했고 구멍 아래 큰 동굴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가 처음 이 동굴을 발견했다는 데서 동굴 이름에 그의 이름 '프라야 나콘'을 붙였다.
프라야 나콘이 동굴을 발견했을 당시는 라마 1세가 태국을 다스리던 때로 라마 1세는 프라야 나콘의 자치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그를 방콕으로 불렀지만 그는 끝내 응하지 않아 방콕으로 끌려가 구금됐다고 한다. 프라야 나콘은 방콕으로 끌려가면서 이 동굴을 발견했던 걸까? 그것은 알 수 없다(분명한 건 휴가 중 발견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자료를 찾아보기 전까지 나는 지금의 태국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태국의 국경이 어떻게 생겨났고, 옆 나라 미얀마와의 관계가 어떤지 관심이 없었다. 태국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고 밝았기에 설마 이 지역에서도 내전이 벌어졌던 시기가 있었을까? 의심하기까지 했다. 더 찾아보니 프라야 나콘의 사연은 더 처절했다. 관광객이라지만 나는 너무 무지하고 게을렀다).
동굴을 보러가기로 한 날 오전까지 나는 심드렁했다. 동굴? 별거 있겠어? 기대하지 않았다. 그랩(태국의 카카오 택시)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40분쯤 달렸다. 시골 마을을 통과했다. 동굴 인근 마을에 가까워지자 그랩 기사가 겁을 줬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산을 두 개 넘어야 해요."
우리는 그의 의도대로 겁을 먹었다. 바깥 기온이 31℃가 넘었다. 얇은 티셔츠가 땀에 흠뻑 젖는 것이 두려웠다. 우리는 그랩에서 내려 매표소 두 곳을 거쳤다. 첫 매표소에서는 동굴 입장료를 냈고, 두 번째 매표소에서 보트 탑승권을 구매했다. 산은 하나만 넘기로 했다. 배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었다. 우리는 바다를 가로질렀다. 해안 절벽에 선인장이 수두룩했다. 우리집에서 길렀던 선인장은 모두 죽었는데? 신기했다.
산에서 내려와 본 해변 풍경. 천국 같았다.
5분 정도 걸렸을까? 해변에 도착했다. 사람이 얼마 없었다. 해변 안쪽 공원의 가운데 즈음에 커다란 매점이 있었다. 매점을 지나쳐 동굴로 가는 숲 입구에 들어섰다. 낙엽송으로 보이는 커다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평탄한 길을 산책하듯 걸으니 오르막이 나왔다. 태국말로 쓰인 간판이 서 있었다. "고생 좀 하십쇼"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오르막을 올랐다. 숨이 약간 찼다. 티셔츠가 금방 땀으로 젖었다. 이윽고 바지도 흠뻑 젖었다. 어기적어기적 오르막을 기어올랐다. 우리 앞에 있던 외국인 부부가 있었는데, 그중 아내가 남편한테 짜증내는 것 같았다. 나의 아내는 다행히 조용했다. 이윽고 고개에 도착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동굴 입구가 보였다. 와! 장관이었다. 우리는 빨려 들어가듯 입구로 향했다.
입구도 장관이었지만 동굴 안쪽은 더 굉장했다. 티셔츠와 바지가 흠뻑 젖어 온 몸에 끈적끈적 달라붙었는데 신경 쓰이지 않았다. 요상한 그 광경에 홀린 것이 분명했다. 천장에서 햇빛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샤워하듯 그 빛을 맞고 서 있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프라야 나콘이 되어 이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그의 기분을 상상했다. 여기를 찾았다고 하는 3명의 태국 왕 각각이 되어 괴상한 동굴 벽을 바라보기도 했다. 왕도 나처럼 놀랐을 것이다. 왕은 "허허! 이것봐라! 이런 게 있었네. 여기에 사원을 세우고 신성시 하라!"면서 주민들을 귀찮게 했을 것이다. 여기서 사는 식물과 동물이 되어 벽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가 탐험을 하는 상상도 했다. 천장에 뚫린 구멍 근처에는 흰 나비들이 날아다녔다. 아내 말에 따르면 '홀리'한 광경이었다. 우리는 동굴에서 한참 머물다가 바깥으로 나왔다. 산에서 내려와 바닷가로 갔다.
해변에 있는 매점에서 차트라뮤(태국식 밀크티)를 마셨다. 달콤한 음료를 마시면서 바라보는 풍경도 아주 근사했다. 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타는 한 관광객마저 천국의 구성요소처럼 보였다. 개 두 마리가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잠시 동안 여기서 저 개로 살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음악 소리도 없고, 오로지 바람 소리와 물 찰랑이는 소리만 가득했다. 당연히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없었다. 평온했다.
그랩 기사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야 했다. 돌아가는 배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었다. 가는 길엔 절벽 반대편 바다를 감상했다. 옛날 사람들은 저 건너편에 파타야가 있고 방콕이 있다는 걸 알았을까?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나는 저 수평선이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영원 같다고 느꼈다. 동굴 탐험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휴식이 달콤한 이유
휴가 마지막 날, 아내와 나는 휴가지에서 경험을 계속 이야기했다.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이번 여행 어땠어?"
나는 대답했다.
"좋았지. 푹 쉬었어. 일론 머스크나 빌 게이츠나 제프 베이조스가 전혀 부럽지 않았어. 누구도 부럽지 않았어. 아! 부러운 사람들이 몇 명 있었어. 리조트에서 일하는 사람, 태국 찜쭘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여기 수완나품 공항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직원이 부러워! 돌아가기 싫어!"
아, 휴가는 좋은 것, 좋은 것 중 최상, 최상의 것들 중 최상급! 하지만 나는 또 생각했다. 매일 마시는 물은 달다고 느끼지 않는다. 산행 중 마시는 물 한 모금은 망고 한 입만큼 달다. 휴가는 이런 것, 고단한 삶 중간에 맞이하는 휴식은 아주 달콤하며 이것을 또 맛보기 위해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공항 대합실 한가운데 버티고 선 비슈누 신께 속으로 말했다.
'우리 내년에 또 보는 거죠?'
프라야 나콘 동굴. ?뻥 ?뚫린 천장 아래 사원이 있다.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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